[스크랩] 1950년대의 가난 그리고 그 다음은...?

  

내 어린 시절의 겨울나기는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그 누구라고 해서 나을 것도 없는 겨울나기.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옛날 이야기지만 당시엔 너무도 지독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건너 마을의 양조장 앞뜰 양지녁에 널려있는 술찌검지를 훔쳤습니다.

술찌검지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먹고 나면 뱃속이 따뜻해지고 훈기가 돕니다.

얼마되잖는 것을 먹었음에도 뱃속이 부글부글 끊어올라 금방 포만감을 느낍니다.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의 훈기로 인하여 잠시의 추위를 이겨낼 수도 있었습니다.  

 

나무가지 없다면 겨울나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맨손으로 얼어있는 나무를 주워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아카시아 나무에는 섬뜩한 가시가 많았습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가 오시면 어찌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주린 배를 채울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들은 해가 떨어져도 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굶주린 배를 움켜 잡아야 했습니다.

 

동네가, 또래들이 정겨워질만하면 이삿짐을 챙겨야 했던 내 어린시절...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어쩌다가 돈이 생겨 구더기 쌀밥이라도 밥상에 올라오면 형제들의 손놀림은 매우

날렵해집니다. 그 밥상에 두부찌게라도 겻들어지면 환호성이 저절로 납니다.

자식이 그리 좋아하는 것을 매번 해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이제는 알겠습니다.

  

살을 에이는 칼바람은 나약한 볼을 헤집고... 거친 겨울 바람은 터진 손등을 할키었습니다.

발가락에 동상이 찾아오는 것은 년례 행사였으며 터지고 찢어진 손등과 목줄기에선 피가 나왔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먹을 것이 있었는지 형제들의 속옷에는 하얀 이가 흐드러졌습니다.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화를 신고 있는 아이

 

 가난한 집에 배급했던, 하긴 모두가 가난해서 받지 않은 집이 없었지만... 밀가루. 그것이 주어지는

날은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의 손길을 목을 놓고 기다립니다. 어머니의 손길에선 감자와 호박을

넣은 손칼국수도 나오고 멸치가 헤엄치는 수제비도 나왔습니다.  

 

 

검은 고무신과 지게 꾼의 오침

 

이런 세월을...

전쟁으로 인한 시련과 가난의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편에는

그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할라치면, 직장을 구할라치면, 시집을 갈라치면 심지어 학교조차 서울...

서울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 서울에는...

 

 

한강에서의 물놀이

엄마와 아들... 여자애 친구와 함께...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잖은 애인과 함께

물놀이하고 있는 사람들. 그져 바라만 보고 있어도 부러운 장면이요

나도 그러고 싶어 눈물이 나는 광경이었습니다.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중에 강강수월래

흩어지고 갈갈이 찢겨진 민심을 수습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념을 심고...

잠시라도 이런 장관을 구경함으로 마음 속을 달래라는 듯이 전국의 인재들을 모아

경연대회를 합니다. 체력은 국력이라면서 국력을 키우자면 이런 일이 잦아야 하고

그런 일에는 온 국민이 열의와 정성으로 동참하여야 한다는

애국자적인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맞이한 축제 한마당중에서

한 때 국부라 칭송받던 전쟁 당시의 대통령이셨던 이승만대통령의 생신날.

사람들은 저마다 집밖으로 나와 축하에 축하를 했습니다. 남의 집 잔치엔 늘 먹을 것이

풍성했습니다. 관공서가 휴일을 삼은 것은 물론이고 군인들조차 특별휴가를 주었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하긴 석사모니의 탄신일... 예수의 탄신일도 많은 사람이 축하하며

그런 날은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교회를 가면 떡도 주고 과자도 주고... 그랬습니다.

 

 

창경원으로 벗꽃 나들이를 나선 사람들

한가해 보입니다. 여유로워 보입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가족과 함께 나와 계절을, 꽃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했습니다. 남산도 가고 경복궁과

창경원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질 못했습니다. 서울가는 것은 공짜가 아니었거든요.

그만한 돈을 학교에 납부하여야 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 남기도 힘든 판에... 그럴 여유가

내 부모님에게는 없으셨을 것이고...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내 형제들은

누구도 그런 내색을 아예 하질 않았드랬습니다.

 

 

경복궁의 호수가 얼어붙었다. 멋지게 스케이팅을즐기는 사람들

이 당시 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다면 그는 유복한 가정의 사람들입니다. 스케이트가 비싸기도 하고

매번 입장료를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머니에 여유 돈이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지요.

나는 중학교 무렵부터 스피드 스케이트를 배웠습니다. 당시 엄마의 호주머니를 몰래 뒤져...

아니 솔직하게... 계돈을 훔쳐내서 샀던 스케이트는 팽킨표, 마치 아라비아인의 칼처럼 생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후엔 전진표 나아가 팬텀이라는 최신형 노르웨이제를 사기도 했습니다.

이래보여도 나는 경기도 대표가 되어 호반의 도시 춘천의 공지천이나 수원의 고척동 다리밑의

빙판에서 경주를 하곤 했습니다. 서울의 동대문 스케이트장에 무료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선수증이 있는 사람에게은 무료입장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이들을 보고 초보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고... 그럼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20세가 지난 어느날은 경희대학 체육과를 스케이트로 가겠다는 놈을 지도하기도

했드랬지요. 그런데 나를 놀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내가 20세가 되던 해에 간경화로

한많고 힘겨운 인생이 너무 무겁다며 고단한 삶과 숨가쁨을 놓으셨습니다. 그 아버지가

나 십여세 때에 스케이팅을 하실 수 있었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하키라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아버지는 서울의 한양대학교를 다니셨다는 말을 큰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통하여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배우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희전문(연세대학)과 보성전문(고려대학)의 아이스하키시합 광경.

 구경꾼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니 구경꾼이라기 보다는 필경 학교측에서 반강제로 끌려나와

응원하는 양쪽학교의 학생들일겝니다. 나도 그러했던 적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이라면 영원한 라이벌입니다. 그 어느것에서도 밀려선 안되는 상대였지요.

바로 이런 것이 하키입니다. 롱 스케이트와는 달리 날이 짧고 굵었는데 그것은 꺽고 달리고를

보다 자유롭게 했습니다. 하키 선수는 다부진 체격과 엄청난 에너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고는

배기질 못하는 그런 운동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요즘 연아라는 어린선수로 인해 유명해진

피겨가 있습니다. 하키처럼 생겼으나 날에 톱니같은 홈들이 있어서 하키보다도 더 자유롭게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춤을 추는 운동에 속했습니다.

 

 

겨울 스포츠의 꽃... 스키.

그러나 이때는 스키를 즐기는 사람보다는 눈썰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름판위에서 즐기기는 썰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철사로 혹은 칼날같은 것을 나무에 박어서 타는 것인데... 외날 썰매같은 것은 스릴 만점의

놀이였습니다. 논의 고불고불하게 생긴 얼음길을 헤쳐나가는 기분... 아주 죽입니다.

겨울을 나기위해 산으로 나무를 구하러 나왔던 농부도 참 신기하다며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눈썰매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보다 그런 그네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겨울 나무를 하여야 할 산에서 놀고들 있으니... 한편으론 가관이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구경하는 자신의 처지에 눈시울이 붉어졌을 것입니다.

 

 

한강변으로 물놀이를 나온 사람들

여름의 꽃은 이렇게 강이나 바다의 모래밭에서 선텐을 하며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너도나도 서울 서울 우리들의 서울 그랬을 것입니다.

 

 

청계전 수상가옥.

한국에도 이런 수상가옥이 있었다는 것을 이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 한구석엔 동남아 우리보다 조금 경제가 떨어지는 나라에나 있을 법한 수상가옥들이

있었습니다. 청계천 연가... 결코 즐거운 노래는 아니잖습니까?

내 이모댁은 서울의 서계동 지금의 서부 역앞에서 사셨습니다. 하두 살기 힘들어지니

나를 비롯한 삼형제가 서울에서 잠시잠시 있다가 내려가곤 했습니다. 서계동 앞에는 그러니까...

지금의 서부역전 밑으론 개천이 흘렀습니다. 그 개천에는 서울 변두리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힘없고 가진 것없는 사람 살기에는 시골이나

서울이나 고단하고 서글프긴 마찬가지였다는 지금의 생각입니다.

 

 

명동거리를 걷고 있는 외국 여성들 그리고 그 곁에는 우리의 엄마들의 옷맵시

내 고향은 경기도 평택입니다. 산짓골이 있는 안정리 미군기지. 씹고개(쑥고개)가 있는

송탄 미공군기지... 공도에 있는 미군 미사일기지. 사방이 미군들 투성이다보니 어릴적부터

누구못잖게 외국사람을 자주 보며 자라났습니다. 우리네보다 희멀건하고 우뚝한 사람들

덩치도 우리네 반이나 더했고 그들이 내밷는 영어가 왜그리 멋있어보이고 경이로운지...

어릴 때부터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늘 부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서울은 어땠을까요? 멋쟁이, 현대, 고급부인들이라는 대명사가 따라붙었던 외국 여성들...

한국여인들의 삶을 보고 안스러운 눈빛으로, 누런 코와 버짐 번진 더벅머리의 아이들을 보곤

애처러운 눈빛으로, 하루의 삶이 힘들어 한잔의 막걸리로 목을 추인 탓에 얼굴이 붉어지고

비틀거리는 우리의 아버지를 보곤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그러했을 것입니다.

내가 처음 베트남에 둥지를 틀면서 주변에 살아가는 현지인을 그리 보았으니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몇걸음 앞서가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것을 보고

배움으로 이젠 우리도 남의 나라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어찌했거나 고마울 뿐입니다.

출처 : 사랑하는 이들에게

글쓴이 : 스펀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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