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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젖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조선의 여인들

2013. 12. 11. 17:37

 

요즘에야 아들을 낳으면 제주도로 여행가고 딸을 낳으면 해외로 여행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딸을 낳았다는 것에 대한 그리 큰 부담이 없는 터이지만

조선시대는 물론 1950년대까지만 해도 딸을 낳으면 환영받지 못한데 비해

아들을 낳으면 집안의 경사로 치부되었고 아들을 낳은 여인은 '누구 누구의 모친'이라는

경칭을 얻고 시댁에서의 발언권이 분명해지곤 했습니다.

이런 가부장적 태산(胎産) 문화 속에서 심지어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이란, 

'임신 중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방법'이란 불가능한 일이 유행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가문을 이을 자손을 낳지 못하면 소박 맞는다는 생각이 널리 펴져 있었던 시절,

후사를 잇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뿐만아니라 낳았다 하면 아들인 여느 여인은

힘깨나 쓰는 집안에 잠시 들어가 아들을 낳아주는 이른바 씨받이도 한때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인들.

우리나라의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사진첩을 살펴보면
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낸 젊은 여인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내외의 문화속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은 장터같은 곳에서도 버젓하게 젖가슴을 내놓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이른바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인들'... 이것은 남존여비의 문화가 만들어낸 풍속입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도 속상한데 자기같은 여자를 낳았다고 해서 무시당하는...
그래서 만들어진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슴을 내놓는 행위는 젖먹일 아들이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흠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드러 내놓고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서양인들의 기록에는 매우 흥미롭게 이러한 여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 도중에나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밖에 나와 있는 여자들이 드물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밖에 나와있는 여자라 할지라도
대부분이 독특한 방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일 경우에는 젖가슴까지 내놓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일 경우에는 매우 박색인 까닭으로
처음에는 이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손 그렙스트 『코레아 코레아』1904)
 
시골보다는 서울에서 더 많이 보이는 여인들의 외출할 때 모습은 더욱 이색적이다.
외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문 밖을 나설 때는 꼭 동방 마호메트 여인들처럼 몸과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머리 위까지 녹색 장옷을 뒤집어쓴 모습은
마치 몸체가 보이지 않게 요술 수건을 쓴 유령이 돌아 다니는 듯하다.
이렇게 몸을 칭칭 감싸면서까지 여성의 미덕을 보존하겠다는 가냘픈
조선 여인의 태도는 모슬렘이나 터키 여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이렇게 몸과 얼굴을 싸서 감춘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거북스럽고 불필요한 의상을 조롱이나 하듯이 유방은 내놓고 다닌다.
(독일 기자 지그프리드 겐테  1901)
출처 : 사랑하는 이들에게
글쓴이 : 스펀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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