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종종 사진과 글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도 다른 분들에게서 받으시는 것같은데... 꼭 나에게 챙겨 보내주시곤 합니다.
어디서 그런 사진들과 글들을 수집(?) 하셨는지... 때로는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그 분께서 보내주신 내용중에서 그냥 받은 편지함속에 묻어두기는...
내 혼자만 보고, 아니 어쩜 많은 이들이 보았을... 이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이렇게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펼쳐 내놓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아련한 옛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슴이 쿵꽝거리는, 뜬구름위에 올라있는 것같은 황홀한 추억도 있겠지만... 중년이 되어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추억이란 대부분 가슴아린 기억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게도 참으로 가슴아린,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런 추억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요즘도 그때와 그리 큰 차이없이 주어진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은... 그때는 너무도 가난하고 힘없는 삶을 살아냈던... 그래서, 어떻하든 내 아이에겐 그런 것을 물려주지 말아야지... 를 다짐하게 되는 그런 지난 날들이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모두 1899년에 외국인이 찍었던 사진이랍니다.
1899년의 서울의 거리
언니의 등에 업힌 아이. 그래도 이 아이는 할아버지(혹은 아버지)의 지게에 업힌 아이보다는
행복한 아이일 것입니다. 자신의 가슴으로 언니 등의 따스함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필경 아늑함일 것입니다. 내게는 한명의 형과 네명의 아우... 모두 사내들인 6형제가
경기도 평택이라는 시골에서 살았지요. 고만고만한 나이또래의 형제들...
양지쪽에 나와서 공부하는 아이들. 1899년의 서울의 보통학교 수업광경.
훈장님을 모시고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처지라는 것은 나름 규모있는 집안의, 일명 자제들이
아닐까요? 1960년대의 우리 형제들... 이른바 국민학교 다니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사진 속의
한 아이는 졸고 있네요.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수업료와 기성회비 그리고
특별기금 등등... 그것들이 없어서, 점심 도시락조차 없어서... 공부에 대한 흥미가 없어서...
그런 내게 찾아오는 오는 것은 저 아이처럼, 병든 닭처럼 늘상 졸립기만 했습니다.
1899년의 서울의 한 성곽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이 성곽이 남한 산성인지 지금의 남대문에서 남산까지 이어졌었던 성곽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겐... 아이가 놀만한 놀이터가 없었던 당시에는 이런 위험한 곳마져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지요. 이런 놀이터마저 없던 우리네는 이보다 더 위험한 짓거리로 했드랬습니다. 가령
송아가루 털기위해 소나무를 타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칡뿌리를 캐다가 뱀집을 건드려
혼비백산 도망가기도 하고... 용돈벌이로 꿀을 채취한다고 벌집을 부수다가 벌떼에게 공격
당하기도 하고... 지금 아이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그것들이 우리네의 놀이이었습니다.
1899년의 서울 모습.
온통 초가지붕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지금의 서울의 예전 모습이라니...
상상이 안될 정도의 변화된 서울의 지금... 세월의 능력이란 정말 슈퍼맨이 아닐까요?
정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의 능력...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이 아닐까 싶네요.
서울 근교 운곡마을의 잔치집 광경
어른들이 거나하게 상을 받고 있는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 들었네요. 어떤 아이는
어른처럼 한 상 떡부러지게 받았구요, 한 아이는 어디서 구했는지 먹거리를 입에 넣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상. 어른처럼 상을 받고 있는 아이. 맛난 것을 입에 넣고 있는 아이를 부
럽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 아~ 저 맛있는 것... 다 먹어치우네... 나도 좀 주지...!!!
우리 엄마는 남다른 음식솜씨가 있었습니다. 해서 이집 저집 동네 잔치집에 불려다니며
음식만들기를 하셨드랬습니다. 그런 날은 6형제의 잔치날입니다. 으례것 어머니가 부르시지지만...
어머니의 부르심이 조금이라도 늦기라도 하면 우리 형제 중 몇명이 길을 나섭니다. 그런 우리
형제를 어머니는 손짓으로 불러들여 당신이 만든 이것저것을 거더 먹이실 뿐만아니라 주머니
가득 이것저것을 담아주시곤 했습니다. 당시는 그런 어머니가 대단하게 돋보였지만... 그 얼마나
눈치보이는 행동거지였겠습니까? 잔치상 벌어지기 전에 지자식 챙겨 먹이는 저 여자... 그여자의
저 철딱서니 없는 것들은 눈치도 없이 이것저것에 때묻은 손을 마구... 눈치보이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굶주린 내 새끼 배채울 수가 없기에 얼굴에 철판을 까셨던... 싫으면
다음부터 나를 부르지 말던지... 그래도 어머니는 종종 잔치집에 불려 다니시곤 했습니다.
서울의 근교 용산나루터에서 장사하는 아이.
저 아이가 무엇을 파는 걸까요? 옃? 떡? 하루에 얼마나 팔까요? 초등학교 몇학년 때일까?
나도 아이스케이크를 팔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 큰소리로 "아이스...깨끼~"라고 외치며 길을
누비었지만 판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두어개를 팔고 나면 남는 이익만큼의
녹아들어가는 아이스깨끼를 배아프도록 먹어대었던...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고...
당신 자식에게 용돈이란 것을 단 얼마라도 주지 못하시던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남보기
부끄러우셨던지... 그때 엄청 혼났던 일이 기억으로 남습니다.
동네 우물가에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나들이를 하시는 할머니. 물지게를 지고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시는 할아버지.
저 아이들을 방그레 웃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생김새가 다른 낯선 외국인이
자신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리 하였을 것입니다.
서울의 보통학교 단체사진
졸업식 사진일까요? 아니면 기념사진 찍어준다니 훈장님을 비롯해서 모두가 모인 것일까요?
세월이 지나면 남는 것은 머리속의 기억과 사진 뿐이라는데... 분명 사진관을 운영(혹은 직원?)
하신 내 아버지가 계심에도 내게는 이런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저것,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그림과 사진으로 보는 옛날 이야기 (0) | 2013.12.11 |
---|---|
[스크랩] 젖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조선의 여인들 (0) | 2013.12.11 |
[스크랩] 사진으로 보는 조선말기 양반의 일상 (0) | 2013.12.11 |
[스크랩] 사진으로 말하는 1900년대 서울 근교 서민들의 삶 (0) | 2013.12.11 |
[스크랩] 아무 것도 하지말자.. (0) | 2013.11.05 |